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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글 : 미야 / 그림 : 순   ​​                       교만

  None /  None

 ※특정 종교와 관련 없는 가상의 세계관입니다.


 “어울리지 않게 성직자 흉내냐? 본인의 수호천사님을 앞에 두고 어따 기도드리고 자빠졌어.”

 조용한 예배당에 어울리지 않는 껄렁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원래도 길지 않았던 기도가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 아멘.” 나지막이 읊조린 에미야가 깍지 낀 손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자칭 수호천사인 남자가 낡은 오르간 위에 경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다리나 좀 오므리지. 천사를 믿는 신자가 봤으면 지금쯤 충격으로 졸도했을 거다. 아니면 천사로 위장한 악마로 오인해서 주님이든 여호와든 찾았겠지.”

 “이 크고 아름다운 날개 안 보이냐? 새하얗고 반짝반짝하구만.”

 “반짝반짝? 천사도 시력이 맛이 갈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만. 깃털에 묻은 진흙이 나 닦고 뻔뻔하게 굴어라.”

 “예이, 예이. 어떻게 된 놈이 매일같이 한 마디도 안 지냐. 그러다 불경죄로 지옥에 간다.”

 

 에미야가 지적한 대로 자칭 수호천사, 쿠훌린의 커다란 날개 끄트머리는 어디서 묻혀왔는지 모를 진흙으로 얼룩덜룩 했다. 본인이 원체 미관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탓에 벌써 며칠 째 얼룩 이 붙어있었다. 빨 수 있으면 떼어다 세탁을 했을 거라고 에미야가 잔소리를 해도 듣는 시늉도 안 했던 것이다.

 

 와중에 살림과 요리를 좋아하는 별난 가짜 사제 겸 진짜 퇴마사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쿠훌린이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을 땐 이미 신랄한 소리가 혀끝을 떠난 뒤였다.

 

 “너를 놀려먹지 않아도 내가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지. 내 퇴마에 휘말려 죽은 이들이 대체 몇 명이라 생각하는 거냐. 최소한 수 천 년은 썩어도 모자랄 죄다.”

 “야아, 내가 그런 소릴 하려던 게 아니라……. 아, 또 시작했네. 아까 나가서 무덤 파더니 이제 네가 들어갈 구덩이까지 파려고? 네놈 팔뚝은 삽질을 잘해서 그렇게 튼실한가보지?”

 “위에 앉기 좋아하는 어느 천사의 무게를 견디느라 단련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

 “이게 진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툴툴거린 쿠훌린이 소리 없이 바닥에 착지하며 날개를 접었다. 나이로만 따져도 헤아릴 수 없는 시간만큼의 차이가 존재하는 사이면서도 막역한지라, 겉으로는 누가 연하고 연상인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에미야는 질리도록 알고 지낸 오랜 친우를 보듯 미지근한 온정과 씁 쓸한 자조를 담아 쿠훌린에게 지그시 고개를 기울였다.

 

 “내일 다시 온다더니 최소한 24시간이나 빠른 등장 아니신가. 더 늦게 왔으면 내가 궁상떠는 모습 따위 안 봐도 됐을 텐데, 이번에는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네 고해 들어주러 왔다, 왜. 계속 지껄여 봐. 다 듣고 나서 걷어차게.”

 “고해 성사가 아니라 안식 기도다. 은총이라면 내가 아니라 교회 뒤편에 묻힌 시체들에게나 내려.”

 “제대로 사제 수속도 밟은 적 없으면서 안식 기도는 무슨.”

 “하면 안 되나? 천사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거만 떨지 않고 포기하도록 하지. 순종하는 어린 양을 조금이라도 치하하는 게 어떤가.”

 

 쿠훌린은 동정하려다 말고 애매하게 밥맛이 떨어졌다는 양 입을 반쯤 벌리고 찜찜하게 깜빡였다.  

 

 “어린 양? 너 올해 서른 아니냐?”

 “수 천 년은 먹은 천사 앞에선 솜털도 덜 빠진 애송이일 텐데.”

 “애송이면 애송이답게 귀엽게 좀 굴어봐라. 대체 어느 ‘어린 양’이 천사를 혀 위에 두고 데굴데굴 굴려 먹냐.”

 

 손가락까지 까딱거려 강조해도 에미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고, 그의 수호천사는 날개를 쓰는 대신 길쭉한 다리를 써서 앞지르는 방법을 택했 다. 몸으로 막는 편이 말로 붙잡는 것보다 늘 쉬웠다

 

 “어이, 에미야.”

 

 표정은 무심하면서 시선만은 불경하게도 천사를 꼿꼿하게 응시했다. 동그랗게 자른 구멍처럼 감정을 도려낸 얼굴이라는 걸 익히 아는 천사는 오늘도 그에게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뭔데, 또.”

 

 천사를 바라보는 잿빛 눈동자 안쪽으로 우울이 깊게 침잠했다. 쿠훌린이 아는 누구보다도 독실하며 불경한 신도는 죽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문장을 완곡하게 입 밖에 냈다.

 “같이 기도해다오.”

 나 때문에 죽은 이들을 위해서. 아마 그러한 뒷말이 잠겨 있으리라고, 천사는 눅눅한 한숨 사이로 생각했다.


***

 무덤에서 기도를 올리는 에미야를 보고 있자면 매번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 시절 쿠 훌린은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에미야는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혼자서는 다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놓친 바람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주저앉아 불타는 마을만을 덩그러니 바라보고 있던 청년. 그에게 중요한 건 구하지 못한 생명들이었지, 그를 건지러 온 천사가 아 니었다. 얼마나 괘씸한 일인가. 모두가 하늘에 기도를 할 때 오로지 땅에 사는 인간들만을 가엽게 여기는 한낱 인간이라니.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는 겉모습 말곤 바뀐 점이 없어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언제나처럼 사람을 살리러 다녔다. 때로는 악에서, 때로는 고난에서, 때로는 고통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구원하고 싶어 했다.

 

 “분수를 모르고 나서는 이들을 보통 교만하다고 평하지 않던가.”

 

 묘비도 없는 무덤 앞에 서서 에미야가 중얼거렸다. 그의 발치에는 갓따다 놓아둔 이름 모를 들꽃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실패로 산을 쌓으면서도 포기할 수가 없어.”

 

 진성 악마를 오랫동안 쫓으면 사람은 심신 양면이 다 서서히 병든다. 그러나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피부가 까뭇하게 타고 눈동자가 금빛을 잃어 회색이 되어버려도, 그의 마음을 갉아 먹는 것은 언제나 그 자신뿐이었다. 어떤 마성도 꺾을 수 없는 강철 같은 의지 이면에는 뻥뚫린 공허가 있었으므로.

 

 “……아멘.”

 

 안식 기도를 마치 고해성사처럼 끝낸 남자가 조용한 기도 끝에 마침표를 달았다. 에미야는 천국에 자기가 누울 자리가 나면 곤란하다며 곧 죽어도 회개만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어떤 기도도 고해가 되지 못했다.

 

 에미야는 발아래로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수십구가 넘는 시체들을 모조리 혼자서 묻은 탓에, 입고 있는 사제복에 흙먼지가 가득했다. 이럴 땐 청소나 세탁과 관련된 익숙한 잔소리도 농담도 없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 절반은 건졌다며. 놔뒀으면 다 함께 자멸해서 불바다가 됐을 거라고.”

 

 곁에 선 쿠훌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위로하듯 짐짓 다정하게 구는 손길이었다.

 

 “원망하려거든 천사를 원망하는 편이 빠르지 않냐.”

 

 실로 그러했다.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인간들은 언제나 하늘에 간원했고, 하늘은 마찬가지로 언제나 무시했다. 쿠훌린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에미야가 무사한 것 말고는 지금도 기실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에미야조차 인간과 하늘 사이에 냉담하게 그어진 선을 처음 느꼈을 때 갈 곳 없는 분노를 터뜨렸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이다. 그는 원망을 모르는 성정답게 금방 체념했다. 하늘이 제 편이 아니라면 그래도 상관없다며 딛고 일어섰다.

 

 “내가 실패한 일인데 하늘을 탓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다음에는 튼튼한 삽이나 하나 사다 주면 좋겠군.”

 

 지친 손이 어깨에 얹힌 온기를 더듬어 감쌌다. 어둑한 시선이 그늘에서 벗어나 그의 천사에게로 향했다.

 

 “기적을 믿어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말이다. 높은 곳에서 보기엔 건방지더라도 힘껏 애쓰는 수밖에.”

 

 먹구름이 걷혀 멀리서부터 빛줄기가 하나둘씩 구름 사이를 비집고 지면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빛은 무덤 곳곳에도 닿아 쓸쓸한 분위기를 그럭저럭 걷어주었다. 에미야는 손을 놓고 빛을 피하여 느린 걸음을 뗐다.

 

 “어이, 에미야.”

 

 땅에서 얕게 돋은 봄꽃의 싹을 피해 마른 가지만 골라 걷던 발이 잠시 멈추었다. 돌아보면 쿠훌린이 날개를 접고 사람처럼 서있었다. 볕이 안드는 땅을 밟고 서서도 눈빛이 새벽하늘을 수놓는 유성처럼 붉게 반짝였다.

 

 “전부 너 혼자 짊어질 필요 없어. 버거우면 손이라도 잡아달라고 해. 난 그러려고 이렇게 찾아오는 거라고.”

 

 천사는 무정하고 또 자비로워, 어린 양에게 도움은 주지 않을지언정 어깨 한 구석이라도 내어주려 무던히 애썼다. 그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에미야는 잠시간 침묵했다. 천사 뒤에 후광이 비치긴커녕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아직 햇빛조차 내리질 않았음에도 그는 눈부신 것을 보듯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프러포즈 한 번 로맨틱하군. 반지라도 가져오면 고려해보지.”

 “사람, 아니, 천사가 기껏 걱정해주는데도 자꾸 징그러운 소리 할래?”

 

 툴툴거리면서도 쿠훌린은 착실하게 에미야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쿠훌린이 제 어깨에 팔을 걸치자 에미야는 로만칼라를 손가락으로 끌러 허공에 날려 보냈다. 빳빳한 천 조각이 거친 바람을 타고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갈 동안, 천사는 날개를 펼쳐 그들의 입맞춤을 숨겼다. 어느 때든 홀가분하게 숨 쉴 줄을 모르는 남자에게 호흡을 나눠주기 위해서.

 

 구해왔고, 구해야 하며, 구할 것인 세상 나머지 모든 존재들의 눈을 피할 때에나 맛볼 수 있는 짧은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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