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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st

글 : 신조 / 그림 : 쿨  ​​                        색욕

  None / @hotbluelancer

 영령은 인간이 아니다.

 

 이 문장이 내포하는 뜻은 단지 생사나 종의 분류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좌에 새겨진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초월하거나, 인간이길 포기하거나, 인간이 되고자하는, 소위 '인간답다.'고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비유에 전혀 가깝지 않은, 정상이 아닌 자들이었다. 뛰어난 육체나 소질보다 그 기질이 더욱.

 

 후유키 시에 소환된 자들도 그랬다. 그리하여 온 백성의 머리 위에 선 고대의 왕도 인간의 언어를 잃은 광전사도 절의 입구를 지키는 부동의 산지기도 있었으나 주로 그 실상은 어그러진 감정의 찌꺼기를 무덤처럼 눌러 담은 자들이었다. 곪은 미련을 죽어서도 안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영령다웠다.

 

 밤의 운동장에서 만나 붉은 마창을 겨눴던 자는 그런 망집들 중에서도 별난 놈이었다. 창병의 성정으로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류의 괴짜였다. 휴식도 무엇도 아닌 일상 속에서 에테르로 만들어진 육체도 제법 익숙해질 즈음, 창병은 붉은 궁병에 대해 그렇게 결론 내렸다.

 

 창병은 언뜻 가벼워 보이는 언행과 다르게 눈썰미가 좋았고 천리안은 없어도 본질을 파악하는 재주가 제법이었다. 하지만 삐딱한 웃음이나 끌어올리는 속이 시커먼 궁병의 속내에 코를 박아본 것은 그런 재주 때문이 아니었다. 꽃다발을 엮는 솜씨가 남부럽지 않게 될 정도의 시간이면 앙숙 같은 사이라도 익숙해지는 법이다. 그 먼지 같은 시선의 열기를 느낀 것은 단지 그런 익숙함 때문이었다.

 

철을 닮은 남자의 뜨끈미지근한 시선이 허공에 흩어지기 전, 창병의 등 뒤로 축축한 습기를 남겼다. 장마철 소나기마냥 척척한 밀착이 마냥 불쾌하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습자지 같은 방막을 켜켜이 치는데 능숙한 궁병의 속내는 짐작키가 철문을 뚫는 것 보다 까다로웠으나 그 미지근한 열기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했다. 묘한 고양감은 익숙한 전투의 흥분을 닮아 더욱 좋았다.

 

 비루먹은 짐승의 갈비뼈 마냥 욕심의 살집이라곤 없어 보였다. 긍지 따위 개나 주라며 껍질처럼 말하는 남자였다. 살과 뼈를 기름삼아, 끝없이 돌아가는 시계 부품 인냥 그저 소비되며 닳고 닳았다. 목표는 너무 거대해 닿을 것 같지도 않았으니 그것은 목표조차 아니었다. 포상도 없이, 무엇을 손에 넣고 싶은지도 잊은 채 쥐는 법만 아는 남자가.

 

 그런데도 원했다. 빈손이라도 움켜쥐길 바랐다.

 

 인생을 진창에 내던지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영겁을 바칠 만큼 독한 남자는, 어지간히 정상이 아니다. 누구보다 이타적으로 누구보다 악착같이 마감한 삶은 지독하게 모순적이었다.

 

 욕심이 없을 리가 있나. 그 모순된 행각이란, 누구보다 과한 욕심이 낳은 오만함이다.

 

 욕망은 대체로 닮았다. 어떤 지점이든 극단에 치우칠수록 닮아있다. 사력을 다한 전투만을 바라며 소환된 창병이 가진 것은, 아마도 가장 날것에 가까운 욕망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궁병의 시선이 품은, 망막하나로 감싼 감정과 충분히 비슷했다. 어느 쪽이나 비린내 나는 종류였다. 사냥하는 법을 알고도 살찌우지 않고 날선 발톱을 구겨 넣은 남자가 지닌 허기였다. 풋내를 감춘 들큰한 애욕은 절절히 끓진 않는 것이 더욱 궁병다웠다.

 

 삐딱한 웃음이 지운 근지러운 호의는 오히려 질이 나빴다. 그런 맹탕 같은 온도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궁병이 만든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며 창병은 입맛을 다셨다. 멀리 던진 수면에 꽂힌 찌가 두둥실 오르내렸다. 식후 담배를 빼물기 전, 보온병에 담긴 보이차를 낸 궁병이 얄미운 혀를 놀렸다. 창병은 담배를 내렸다.

 

 꽃다발을 엮는 솜씨가 남부럽지 않게 될 정도의 시간이면 앙숙 같은 사이라도 익숙해지는 법이다. 어느새 나눠먹게 된 도시락이 연일 감탄을 자아내는 솜씨인 것만이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다. 궁병이 창병의 항구에 발을 들이는 만큼, 창병은 궁병의 거처를 들락거렸다. 닳은 소파에 길게 몸을 눕히고 서로 종아리를 맞댔다. tv 채널을 돌리며 귤을 까먹고 뒹굴다 잠들면 궁병은 슬그머니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쁘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더 좋진 않았다.

 

 불장난 취미는 없었지만 창병은 방화범이라도 된 것 같았다. 건조한 지푸라기 사이로 꺼질 것처럼 묻혀있는 불씨의 존재를 몰랐다면 그저 음식이나 얻어먹으며 배를 채웠을까. 그 가소롭게 숨긴 불씨를 살라버리고 싶었다. 창칼을 부딪히는 것 만큼 맹렬한 불길을 원했다. 미지근한 열기가 남긴 수포가 어느새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있었다.

 

 다짜고짜 입술부터 들이대는 법은 따지자면 켈트식이다. 약탈에 가까운 법이 선택된 것은 궁병보다 창병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괜찮은 시도였다. 말로 하는 것보다 무기를 겨누는 대화가 더 익숙한 두 남자에게 어울리는 접촉이었다. 적당히 솔직하고, 사나웠다.

 

 궁병의 등을 떠받히던 단단한 벽이 어느새 창병의 날개뼈를 눌렀다. 순식간에 자세가 반전되자 궁병은 창병의 어깨를 짓눌렀다. 앓는 소리를 내기 전에 궁병이 입을 벌렸기 때문에 창병은 먼저 궁병의 혀부터 허겁지겁 삼켰다. 퍽 바란 습윤한 열기가 입속을 그득 채웠다. 혀뿌리가 아릴정도로 구석구석 쓸고 비볐을 때는 숨이 차올라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창병은 궁병의 어깨를 겨우 밀었고 두 몸은 적당히 멀어졌다. 심장이 쿵쿵 울리며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 바짝 조였다. 창병은 틀리지 않았다. 그랬지, 분명 더 좋을 거라고.

 굶주린 짐승은 사냥하는 법을 아는 법이다. 오래도록 타인의 배만 채워주기 바빴던 남자는 사냥감을 눈 앞에 두고 곧 선택했다. 길들이지 않은 발톱은 충분히 날카로웠고 쨍쨍한 욕심이 궁병의 눈 안에 온통 드글거렸다. 비린 감정의 생생함에 창병의 뱃속이 뜨끈해졌다. 무욕해 보이는 남자가 품은 가장 날것의 욕망이 창병의 뱃속을 꽉 채워 불 지폈다.

 창병의 옷을 끌어당겨 먼저 거리를 좁힌 것은 궁병이었다. 선수를 놓치고 계속 양보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으니, 창병은 궁병의 욕망이 허기를 담고 다음수를 두는 것을 기꺼이 반겨 허벅지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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