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Envy

글 : 알트 / 그림 : 핏져            ​​       질투

 @Ctr1_V / None

 또 이 기분이다. 랜서는 뒤통수를 찌르는 불길함을 떨쳐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갑을 꺼내 드는 손님에게 현재 특정 메뉴 행사 중인데 포인트 카드는 있는지, 쿠폰은 있는지를 묻는 내내 느껴지는 이 시선 탓이었다. ‘또’라는 말처럼, 이건 하루이틀 이어진 시선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쏘아 붙는 저 시선이 노골적이라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적의라고 하기엔 너무 미적지근하고 선의라고 하기엔 따갑다. 어딜 가든 느껴지는 짜증 나는 시선은 분명 그 남자의 것이었다.

 아처 클래스의 남자는 궁병 특유의 좋은 시력을 두고 엉뚱한 데다 써먹고 있었다. 본래 저격을 위한 시력일 텐데, 이런 개인적인 감시용이라니. 또 사람을 어찌나 잘 구분하는지, 세이버의 마스터가 장을 보러 왔을 땐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 다섯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어중간하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한 종류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시선 자체도 달갑지 않다만, 억울하게도 그 눈빛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랜서뿐인 것 같았다. 하루는 그 감이 좋다는 세이버에게 아처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느냐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세이버는 음, 소리를 내며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아는 아처, 그 남자 말입니까? 그가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세이버까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하고는 랜서의 착각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상황이 이러니 랜서는 어디 가서 푸념조차 늘어놓을 수 없었다. 아처를 잘 아는 서번트나 마스터들은 믿어주지 않거나 관심도 없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가서 원수 같은 사이면서 동시에 애인인 남자가 하나가 있는데 그 남자가 3km 밖에서 자길 감시하는 눈빛이 따갑더라~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보니 저 부담스러운 시선은 랜서 혼자만 아는 것이었다. 대체 저 집요한 눈빛을 왜 남들은 모르는 건가. 랜서는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도 못한 채 매일 지겹게 달라붙는 눈빛을 외면하고자 했으나, 날이 갈수록 그 시간도 집요함도 심해져, 단순히 무시로만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랜서 씨, 피곤하세요?”

 

 손님을 보내자마자 호흡을 여러 번 짧게 내쉬니 사장씨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직접 괜찮냐고 물어볼 만큼 상태가 심각했나. 걱정 끼치게 할 정도였다니. 랜서는 평소처럼 씩 웃어 보이며 손을 휘적였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잠깐 쉬실래요? 오늘 한 번도 안 쉬셨잖아요.”
 “그럼 한 대만 태우고 올게.”

 

 이 식당의 사장은 한 번 결심하면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주는 호의를 계속 거절하기도 찜찜하다. 랜서는 담배를 흔드는 시늉을 하며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반에 던져놨던 담배를 휙 낚아채고 흡연석 구석으로 이동해 불을 붙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빨아들이지도 않고 불쌍한 필터만 너저분하게 깨물던 랜서는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시선에 진저리를 쳤다. 담배 한 대 태울 시간도 주지 않는다. 휴식은 방금 시작했지만, 저 눈빛을 받고 있으면 휴식이 아니라 고문 시간이나 다름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저 눈빛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겹다.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뜨겁다. 멀리 떨어져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을 텐데 당장이라도 랜서, 하고 부를 것 같은 시선이다.

 

 “랜-”

 

 정말로 들려오는 목소리와 텁, 하고 어깨를 잡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털지 않은 불붙은 재가 옷 위로 후드득 떨어지고 하얀 천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잽싸게 재를 털어냈지만, 회색 선만 길게 남을 뿐,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까운 셔츠만 날려 먹은 셈이었다.

 

 되돌릴 수 없으면 대충 넘기자 싶어진 랜서는 담뱃재를 마저 털어내고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처인 줄 알았는데 서 있는 사람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사장씨였다.

 

 “-서 씨-? 안 다치셨어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캐스터의 불꽃과 비교하면 이런 작은 불씨 정도는 뜨겁단 생각도 들지 않지만 당황하는 얼굴에 대고 그런 말을 할 순 없으니 랜서는 그냥 허탈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제 옷 빌려드릴 테니 입고 가세요.”
 “대충 가리고 가면 되는데.”
 “죄송해서 안 돼요!”

 

 씩씩한 목소리로 고함을 빽 내지르며 탈의실로 우다다 달려간 그녀는 입고 있는 것과 똑같지만 훨씬 넉넉한 품의 검은 옷을 건넸다. 얼떨결에 옷을 받자마자 옆구리에 낀 랜서는 탈의실로 향했다.

 “빨아서 돌려주면 돼?”
 “안 빨아도 되니까 조심해서 입어주세요. 남자친구 옷이거든요!”

 

 그렇게 귀한 옷을 빌려줘도 되는 건가 하다가도 사소한 문제를 길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랜서는 금방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잠깐 실례하겠다 이야기 하고 탈의실로 들어간 랜서는 붉은 궁병의 시선을 피해 바로 창문에 커튼을 쳐버리고 담뱃재투성이가 된 옷을 훌훌 털어버렸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구멍이 뚫린 셔츠를 꾹꾹 접어 손에 챙겨뒀다. 몇 번 입지 못하고 버리게 된 하얀 셔츠가 아까워, 증거를 직접 보여주고 비용을 아처에게 달아둘 생각이었다.

 

 앞치마까지 챙겨 탈의실 밖으로 나오니 사장은 벌써 본인 자리로 돌아간 상태였다. 가게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손님의 결제를 돕던 그녀는 랜서를 보며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문 닫을 거니까 랜서 씨 먼저 가세요.”
 “아직 시간 남았잖아?”
 “마감도 얼마 안 남았으니 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본의 아니게 엄청나게 걱정 끼쳐버린 모양이다. 조금 미안해졌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애초에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으니, 그쪽에다 따져서 해결할 차례였다. 랜서는 잠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까 시선은 대교 근처였던 것 같은데. 방향만 알아도 가야 할 곳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네.”

 

 다음에 다시 보자 인사하고 식당에서 나온 랜서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

 랜서가 식당에서 나오는 걸 확인한 아처는 대교 위에서 내려와 은닉처로 향했다. 딱 침대 하나와 자질구레한 가구 몇 개만 채워 넣을 수 있는 좁은 방. 인간이라면 불편한 장소겠지만 서번트에게는 충분한 공간이다. 더 깊게 따지면 서번트에겐 이런 공간 자체가 불필요하나, 아처에게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선 아처는 곧바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자신의 몸을 내동댕이치는 것처럼 힘없이 쓰러진 탓에 침대가 잠시 휘청하는가 싶더니, 튼튼한 스프링이 지지해준 덕분에 살짝 꺼졌다가 금방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잘게 떨리는 작은 진동을 느끼며 아처는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리는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 누군가가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텅, 텅, 속이 빈 철의 맑은소리가 울렸다. 철로 된 계단을 밟아 걸어 올라오는 사람의 가벼운 발걸음이 저절로 연상되는 소리였다. 발소리의 주인을 잘 알고 있는 아처는 문 앞에서 그 소리가 멎어도 감고 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잘그락거리는 열쇠 소리와 찰칵, 하고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 모두 예상한 소리였다.

 

 “어이, 아처.”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드디어 눈을 뜨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보였다. 파란 머리카락과 완전히 반대되는 붉은 눈동자는 낮 동안 내내 관찰했던 이의 것이 분명했다.

 

 “못 보던 옷이군. 새로운 취향이 생긴 건 아니겠지.”
 “이미 다 지켜봐 놓고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데.”
 “따지러 왔나?”
 “잘 아네.”

 

 마음에 들지 않는 전투를 치를 때보다 더 냉랭하고 툭 내뱉는 목소리가 여간 화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붉은 창을 꺼내 들어 시비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랜서는 아처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턱,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가 마음먹으면 그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을 테니 부러 낸 소리가 분명했다. 아처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가까워지는 랜서를 낮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랬냐?”
 “이유가 꼭 필요한가?”
 “넌 이유 없으면 그런 행동 안 하는 놈이잖아.”

 

 허리를 숙여 아처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춘 랜서는 손가락으로 아처의 심장이 있을 부근을 쿡 찔렀다. 한 번 꿰뚫리고 한 번 꿰뚫지 못한 심장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이유. 이유라면 하나하나 설명하면 구차해질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아처는 목소리를 내어 설명하는 대신, 팔을 뻗어 랜서를 끌어안고, 몸을 뒤집어 자신의 자리에 그를 밀어냈다. 찰나에 위치가 바뀌고 타인의 팔 안에 갇힌 자세가 되었지만, 랜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이, 아처. 좀 부담스러운데.”
 “그런가.”

 

 랜서의 붉은 눈에 비치는 석상 같은 잿빛 눈에 느릿하게 욕망이 올라왔다. 무욕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눈빛은 늦여름에 몰아치는 태풍 같았다. 랜서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처에게 턱짓을 했다.

 “이리 오라고, 아처.”

 

 그의 명령에 홀린 듯 희게 드러난 목덜미에 입맞춤하고 랜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태양을 닮은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으니 그 열기에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햇볕에 타들어 가는 물고기의 기분이 이런 걸까. 아처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열기조차 눈에 온전히 담으려 노력했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 동시에 부러운 이의 모습. 동경과는 차원이 다른 너저분하고 더러운 감정이다. 살인자인 자신과 달리 영웅 그 자체인 그 모습을 한참 노려보던 아처는 그의 허리를 더듬으며 눈을 감았다.

Envy.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