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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d

글 : 김뀨                 ​​                       탐욕

 그저 처음 느껴본 감정이다. 이것도 아무런 가치는 없다, 아처는 무심한척 고개를 돌린다.


 아쳐라는 별명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탐욕스레 틀어쥐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소원하는 것 뭐든 백발백중으로 사랑이든, 성적이든, 직위이든 간에.
 

 반대로 말하면 이제까지 실패 없이 소망했던 모든 것을 가져왔던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쳐의 친구들은 모두 그같이 되기를 선망하면서도 그가 원하던 것을 가지지 못한 그때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완벽한 사람이 무너지는 때는 그게 어떤 사소한 일이든 간에 이제껏 쌓아왔던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릴 테니까.

 

 완벽한 하루였다. 이제껏 해왔던 그대로 오전의 시험에선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오후에 있던 경기에선 쿼터백으로써 흠 없는 득점을 했으며 뒤풀이 파티에선 빛나는 애인과 함께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그냥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무결한 하루였다. 아쳐가 평소보다 일찍 오른 술김에 - 호기심에 - 평소 들어가지 않던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바닥에는 출처 모를 쓰레기들이 나뒹굴었으며 대로변에선 볼 수 없는 폐주사기, 가루를 담았던 봉지 따위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는 골목이었다. 그것 외에 딱히 불쾌한 것이라곤 없지 않았을까, 날을 떠올리던 아쳐가 원인 모를 미화로 기억을 꾸민다. 자신이 다녀왔던 길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일탈의 흔적에 완벽으로 빚어진 아쳐가 흔적을 숨기지 않고 걷는다. 뭔가 이어지는 것 같은 쓰레기가 총총 길을 만들고, 그것을 따라 발길을 옮기던 아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레기통 옆에 기대 덩그러니 놓아진 인형 같은 사람이었다. 정정하자, 인형보다는 때 탄 시체 같네. 주름잡힌 옷에 언제 빗었는지 모르게 엉킨 머리카락에서 묘하게 탄것같은 냄새가 났다. 죽었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원인 모를 땀방울에 소름 돋는 감각을 느낀 아쳐가 손을 뻗어 눈앞의 사람 - 이미 그에겐 시체였다.- 을 만져본다. 따듯하네, 어지러이 흩어진 열기가 손바닥에 닿아 시체가 아닌걸 증명하는듯하다. 천천히 올라온 취기는 이내 아쳐의 머리를 집어삼켰고 눈앞의 사람을 동화에나 나올법한 미인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옷이 구겨지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그가 꼬질꼬질한 인간을 업으면서 생긴 주름은 개의치 않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평소 같았으면 돈이나 던져주고 말았을 텐데. 자신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골목에서 헤매다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쳐는 유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내뱉었다. 
 

 아무리 단련된 몸이라도 골목에서부터 집까지 사람을 지고 30분가량을 걷는 건 무리였나. 집 문을 열어 젖히자마자 내동댕이쳐진 사람은 아픈 기색도 없이 뒤척인다. 깨끗한 집안에 홀로 더러운 게 보기 싫어서. 아쳐는 시체같이 널브러진 그 사람을 씻기고, 갈아입히고, 깔끔하게 만들어서야 침대에 눕혀주었다. 물론 그 뒤로 완전히 지쳐서 본인은 옷만 벗고 누워버리긴 했지만, 사람을 주워온 것치고는 퍽 평안한 하루라고. 아쳐는 얄팍한 위로에 잠을 청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취기가 빠져나가자마자 제 옆에 누운 깔끔한 인상의 사내가 누군지 모르긴 했지만.

 

***

 아쳐는 항상 침착한 사람이다. 생각한 것보다 완벽하지 않은 점수가 나와도, 경기에서 실수해도,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항상 자신을 다잡을 줄 안다. 제 깨끗한 집에 출처 모를 노숙자가 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찬찬히 그를 뜯어보고 있는 걸 보면 더욱더 그렇다.

 

 생각한 것보다 말끔한 인상이네, 부드럽게 풀린 파란색 머리카락에 하얗게 질린 피부가 대조적이다. 단정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팔뚝에도 모자라 목까지 점점이 이어진 흔적이 꺼림칙한 느낌. 그것 외엔 딱히 거슬리는 것도 없나.. 원래 입고 있던 누더기 같은 가죽 재킷에 티셔츠, 바지까지 제 것으로 바꿔두니 당장에라도 같이 등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저곳을 뜯어보는 아쳐의 눈에 상대의 빨간 눈동자가 어느 순간 자신을 비춘다.

 

 " .. 이름은? "

 " 랜서, 단골은 쿠 훌린이라고 부르지. " 

 

 아무렇지도 않게 누운 자리에서 기지개를 켠 쿠 훌린, 랜서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지난밤엔 잘 즐겼나? 기억이 없는걸 보면 약도 따로 주사해준 모양이네. 고맙기도해라."

 

 히죽 웃는 얼굴이 간밤의 단정함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다. 앉은 자세에 구부러진 어깨가 기운 없는걸 뜻하기라도 하는지 어깨에 걸친 머리카락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 어떻게 계산할까? 간밤에 뭘 했는지 양심에 따라 말해줘, 솔직히 기억은 없지만 약에 쩔었어도 이건 잘하거든. 안그래? "

 

노골적인 제스쳐가 불쾌할 정도로 와 닿는다. 관계한 걸 기반으로 말을 내뱉는 입이 꾸며진것처럼 발그레하다, 물론 마주나오는 말은 지저분한 것 뿐이지만. 이어지는 손짓, 단어, 그리고 표정. 묘하게 달아오른 것 같은 얼굴이 뜨겁다. 입을 여는 게 두렵다, 간밤엔 아무 일도 없었고 단지 데려와서 씻기고 뉘인 것 뿐이라는 단순한 말을 하는 게. 취기에 이끌려 저지른 짓임에도 완벽한, 완벽해야 할 자신의 모든 행동이 깨어진 아쳐는 이 상황에 가장 알맞은 행동을 고르려 빠르게 머리를 돌린다.

 

 " 미안하지만 지난밤에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지금이라도 이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 끊긴 혼자의 독백이 어색한 공기를 모아 둘 사이를 채운다. 지난밤의 기억을 통째로 잃은 저렴한 약쟁이 랜트보이, 그리고 이제껏 완벽한 인생에 결점을 남기고 싶지 않은 그가 시선을 마주한다. 한 번의 선택으로 뒤틀린 인생을 보는 것은 여러 번이지만 그 본인이 되어보는 건 처음이야. 이름 모를 감정에 도취한 아처는 눈앞에 있는 게 제 연인이라도 된다는 듯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부드럽고, 엉킴 없이 풀린 긴 머리카락이 손에 감기고. 말문이 막혔던 쿠 훌린이 한번 크게 웃고선 달려들어 입을 맞췄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아처가 연인과 해왔던 이제까지의 키스를 떠올리고선 떨쳐내듯 양손으로 랜서의 볼을 끌어당긴다. 혀가 얽히는 느낌이 생생하게 취기 빠진 머리를 때리는 듯 다가온다. 자연스레 뻗어진 손이 아처의 윗옷 안으로 파고들어 능숙하게 허리를 만진다. 밀쳐서 눕히고, 제 것처럼 입혀진 랜서의 티셔츠를 벗겨내고 나서야 아처는 지금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아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멈추기에 눈앞에 있는 쿠 훌린은 완벽하게 아름답다는걸, 놓치고 나면 기회가 없다는걸. 자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을 즐기는 것밖엔 답이 없지 않을까. 손이, 덩그러니 놓였던 손이. 위를 차지한 아처의 볼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이 움직이는 걸 본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그 상투적인 말을 입으로 따라 하자 더이상의 여유를 두고 싶지 않았다, 

 

 잇자국이 새하얗게 뜬 어깨에 수놓아진다. 흠집이 생기는 게 좋아?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좋아, 이제껏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앞니부터 송곳니까지, 나란히 새겨지는 상처를 혀로 핥는다. 배어 나온 향이 어지럽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잔뜩 새겨진 허벅지는 지저분하고, 엄지로 흔적을 따라 흝으면 움찔거리는 허리가 꽤 얄상하다. 그러고보니 바지는 따로 입혀놓지 않았구나, 걷어낸 이불아래 구겨진 시트. 그 사이에 올려진 랜서는 접시위에 올려둔 메인디쉬와 같이 매끄럽게 꾸며진 채다.

 

 " 왜, 너무 지저분해서 할 맛이 떨어지나? 미안하게 됐네, 내 단골손님들은 다 난폭하거든."

 

 그렇게 거슬리면 입으로만 해줄까? 꽤 잘하거든. 응? 맨 살갗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랜서가 한점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을 꾀어낸다. 아까부터 홀린것같은 기분을 떨쳐낼수없는 아처는 거기에 순순히 응할 뿐. 까닭 없이 이어지는 난폭하고 거친 손길에 랜서는 의도한 신음을 흘린다. 자신은 분명 완벽하고 계산된 생각 아래에서만 관계를 가졌고 결벽에 가깝게 깨끗한 상대와만 관계를 가졌다. 완전히 도로를 벗어나 달리는 상태가 된 차를 쉽게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는 없듯이 아쳐또한 제 버릇과 같은 결벽에서 완전히 벗어난 랜서를 놓칠 수 없었다. 완연한 탐욕이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온 작은 욕구가 머리를 꿰뚫었다.


***


 처음으로 지각했다. 늦게 들어온 아쳐를 강의실 안의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내일은 해가 북쪽에서 뜨려나, 소곤거리는 농담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엉망으로 챙긴 가방을 뒤지고 수업을 받는 아쳐의 머리 속에는, 그저 어제 챙겨온 파란색 미인이 가득이였다. 본래 자신을 통제하고 마는 사람들은 끈이 풀리는 순간부터는 막을 수 없다고 하던가. 그의 욕망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쌓아 올려진 것이였다. 누군가의 기대, 누군가의 부탁, 누군가의 선망, 누군가의 동경. 자신이 바라왔던 것 없이 살아온 그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무언가를 끝없이 바라왔던 것과 같았다. 빨간색 시선이 아직도 자신을 훑어보는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쥐고, 피부를 물어뜯고 싶은 욕망이 선연하다. 교수가 자신을 호명하는 것도 모른 채 망상에 빠진 그를 모든 타인은 그저 때가 왔노라 느낄 뿐이다. 완벽이 무너졌다.

 

 수업을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른 채 오후 연습도 빠진 아쳐는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좋은 냄새다, 자신 말곤 요리를 하지 않던 집안에 누군가 요릴 하고 있었다. 티셔츠 한장에 구겨진 바지를 꿰어 입은 파란 머리의 남성. 랜서였다. 한번도 연인 같은 행동을 바라본 적 없는데도  자연스레 허리를 감아 끌어안는다. 적당한 온기에 단단한 허리, 그리고 흔적들. 상투적인 소유를 주장하는 그 자욱들. 아쳐는 만족스레 어제의 그 자국에 입을 가져다 댄다.

 

 " 아야, 아프잖냐! '

 

 분명 날카롭고 신경질적 이여야 할 목소리가 제 귀에 달게 들린다고 하면 착각일까, 자신이 쓰는 것과 같은 달콤한 바디워시 냄새가 입에서 코를 타고 흐른다. 아쳐는 어제부터 이어진 이 탐욕을 지울 수 없음에 당황스러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낀다. 한편으로는 제가 저 자신을 통제할수 없음에 어색해하면서도, 자신이 만족할수있는 이 욕구를 느낄수있다는 점에 안도하기도 했다.
 

 아쳐는 이 모순적인 감정을 어떻게 정의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 사이에 요리를 마친 쿠 훌린이 아쳐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 자, 다됐으니까 좀 비켜봐."

 

 정신을 차리지는 않았지만 순순히 쿠 훌린의 말을 따르는 아쳐는 얌전하게 의자에 앉는다. 매일같이 자신이 차리고 자신만이 앉았던 책상의 맞은편에 랜서가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

 ..왜?'

 

 입 모양으로 발음하는 랜서를 아쳐는 미소로 답했다. 그 얼굴이 따스했다. 어쩌면 자신은 줄곧 이런걸 바라왔는지도 몰라. 욕구를 무시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욕구에 짓눌려 죽는다. 지금의 자신처럼. 아쳐는 쿠 훌린이 만든 따듯하고 상냥한 요리를 입에 넣었다. 마치 저 자신의 욕망을 씹는 것 같은 느낌에 야쳐는, 아니 에미야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며 목으로 음식을 넘긴다. 

인간의 욕구라는 것은 끝이 없고, 만족하려면 바닥없는 항아리를 채우는 것만 같아서 이윽고 요리에 행복을 느끼던 에미야는 제가 더한 애정을 바란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가 지금은 쿠 훌린이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제게 요리를 해주는 것만으로, 혹은 저를 보고 웃어주는것만으로 만족하지만. 언젠가 그가 자신을 보지 않아서, 혹은 하루정도 요리를 빼먹었다고, 아니면 ..... 가늘게 눈을 떴다. 에미야는 고개를 치켜든 탐욕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이끌려 쿠 훌린이 제게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둬야겠구나. 아무도 모르는 속내를 검게 칠할뿐이다.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에미야가 웃었다. 아가리를 벌려 자신을 삼키는 순수한 소유욕에 잡아먹힌 채로. 

마주 웃는다. 어느 날 길에서 본 뒤로 잊을 수 없었던 하얀 머리카락의 대학생을 보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술에 약을 타서 건네고, 그 앞에서 불행한 노숙자인 척을 했던 쿠 훌린이. 마찬가지로 똬리를 튼 욕심에 잡아먹힌 채로.

그저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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